[활동소식] ‘강간문화에서 평등문화로’ 강간죄 개정과 한국 사법의 과제 토론회
지난 9월 21일, 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강간문화에서 평등문화로, 패러다임의 전환 - 프랑스 형법상 강간죄 개정과 한국 사법의 과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2025년 프랑스의 강간죄 개정 사례를 살펴보고, 한국의 강간죄가 무엇을 기준으로 성폭력을 판단하고 있는지, 그리고 동의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법과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갈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프랑스는 강간죄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산드린 미라벨로 프랑스 알레스 지방법원 검찰청 성폭력·가정폭력 전문 검사는 2025년 개정된 프랑스 형법과 그 이후의 수사·재판 현장의 변화를 소개했습니다.
개정된 법은 강간을 판단할 때 ‘동의 없는 성적 행위’를 중심에 둡니다. 동의는 자유롭고 자발적이며 구체적이어야 하고, 언제든 철회할 수 있습니다. 침묵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동의가 있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미라벨로 검사는 이러한 법 개정이 무죄추정이나 증거의 원칙을 바꾼 것이 아니라, 수사와 재판에서 성적 동의가 있었는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살피도록 판단의 초점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피해자의 특성에 맞는 조사 방식, 다양한 객관적 증거의 수집, 피해자의 반복 진술과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 등 프랑스의 현장 경험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한국의 강간죄, 무엇을 바꿔야 할까
전윤경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의 강간죄가 폭행·협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현실을 짚으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의 성적 행위에 동의했다고 해서 다른 행위에도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각각의 성적 행위에 대한 자유롭고 구체적인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법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수사와 재판의 과정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피해자의 침묵이나 비저항, 지연된 신고, 가해자와의 관계 지속 등을 동의의 증거로 기계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하는 수사·공판 지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또한 영상조사, 디지털 증거 보전, 의료·심리 지원 등 피해자의 반복 진술과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관계와 혼인은 성적 동의가 아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습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성적 폭력이 다른 폭력에 비해 쉽게 드러나지 않는 현실을 짚었습니다. 혼인이나 친밀한 관계 자체가 모든 성적 행위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배우자 간 성폭력을 명확히 다루는 법과 제도,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적 폭력을 가시화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법 개정 이후 실제 현장에서 변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경찰과 수사기관의 조사 방식, 피해자 지원체계, 교육과 인식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강간죄의 법적 기준을 넘어, 동의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법과 제도, 수사와 재판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어떤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 성적 행위마다 자유롭고 구체적인 동의를 확인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은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변화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인식과 일상의 관계 역시 함께 변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가 이번 토론회를 통해 나눈 동의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에 뜻을 함께하며, 폭행·협박 중심의 강간죄를 넘어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가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강간문화에서 평등문화로.
동의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평등한 관계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걸음에 함께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