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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기사> 5·18 성폭력 증언의 긴 침묵을 의아해하는 당신에게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으로 2024년 9월 출발한 '열매'는 현재 피해자와 그 가족, 이들과 함께하는 활동가 및 연대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동안 과거사의 젠더폭력 문제를 공론화하고 법적 투쟁과 공동체 치유 활동을 해왔으며 이 활동을 확장하기 위해 오는 2월 비영리민간단체로의 창립을 준비 중입니다. 창립을 앞둔 열매의 활동가들이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걸어온 길을 전달하기 위해 오늘(1월 27일)부터 매주 화요일 다섯 차례 연재를 이어갑니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지난 2024년 8월 29일 오후 광주 서구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모임 '열매'를 결성했다.


어떤 폭력은 말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과 몇 겹의 고민, 그리고 결단을 필요로 한다. 폭력은 피해자의 몸에 단순히 상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그 폭력의 공포를 되살리는 몸의 기억을 남기기 때문이다. 특히 그 폭력이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잔혹한 형태에, 자신의 몸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만드는 성폭력일 경우 더욱 힘들어진다. 이러한 폭력은 제삼자의 위치에서 객관적으로 서술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이때의 증언은 과거 폭력이 다시금 습격해 온 고통 속에서 가까스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몸에 각인된 폭력, 그리고 내면화된 수치심의 역학을 알지 못한다면 성폭력 증언이 공적으로 발화되기까지의 긴 침묵의 시간 또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이하 5·18) 성폭력 문제의 경우가 그렇다. 성폭력 피해당사자에 대한 악의적인 폄훼나 비난만큼 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순진한 태도 뒤에 가려진 무심함이다. 5·18 성폭력 피해당사자의 모임인 '열매'에 대해 어떤 이가 이렇게 물어왔다.


"5·18은 4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 질문을 되바꿔 건네려 한다. 이러한 질문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45년간 말하지 않았던 피해당사자의 책임을 추궁한다. 실제 45년의 시간은 침묵 속에 놓여 있지 않았다. 성폭력에 대한 증언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이들의 목소리가 부정 당하거나 외면 받으며 사회에 들리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위의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성폭력 증언에 응답하지 않고 침묵의 구조에 공모한 '우리의 책임'을 상기하는 물음으로.


성폭력 증언의 좌절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조사보고서는 위 표를 통해 5·18 성폭력 피해자의 공개 증언이나 제도적 신고가 이루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과거 성폭력 증언은 '침묵된' 것이 아니라 외면 받고 단절된 것이다. 보고서 220쪽의 <표 17>.



5·18 성폭력에 대한 증언이 완전한 침묵 속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피해 증언은 1980년대에도 간헐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1988년 7월 <국민신문>('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전남지부' 발행)에는 5·18 당시 계엄군에 끌려가 다른 여성들과 강간을 당했다는 피해 사실이 보도되었다. 이는 '5·18 부상자 추가 신고'에 접수된 한 여성의 신고서로, 당사자 증언이 공적 제도에 등장한 흔적인 셈이다.



기자는 신고서의 전문을 공개하며 편집자 주에서 "공수부대원에 의해 18세의 순결이 짓밟힌 여고생의 기막힌 사연"이 분노케 한다고 썼다. 이 보도가 주목받았음에도 신고한 여성은 실제 보상 심의에서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다만 정신이상 병증으로 장해등급 1급을 판정받아 보상받았을 뿐이다. 그녀의 사연은 1991년 발간된 <광주민중항쟁과 여성>에도 '군인들의 집단 성폭행으로 유린당한 여고생의 정신분열증(조현증)' 사례로 실린 바 있다.


이 여성에 대한 추가적인 사실이 2018년 <한겨레> 보도로 밝혀졌다.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89년 '5·18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그녀의 피해 사실이 증언될 수 있었으나 무산됐다는 것이다. 당시 5·18부상자동지회 회장은 그녀의 증언을 직접 들은 후 청문회에서 계엄군의 성폭력을 쟁점화하려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및 청문회에 함께 했던 동료들은 이 사건이 너무 잔인해서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청문회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만류한다. 이는 성폭력을 피해로 간주하지 않는 차별적 관점으로 관련된 증언을 좌절시킨 역사를 보여준다.


5·18 기간 중 간첩의 누명을 쓰고 수감되어 겪었던 성고문을 1989년 처음으로 증언한 전옥주 또한 수기와 다수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증언한 이후 공동체의 적대와 혐오를 감내해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89년 2월 24일 '광주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는 전옥주(사진 맨 왼쪽)씨.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보고서 216쪽.


평등하지 않은 진실


'폭도에 의한 폭동'으로 폄훼되었던 '광주사태'는 민주화 이후 1995년 특별법 제정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이라는 법적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반영하는 논의가 이루어질 정도로 5·18은 명실상부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국가가 주도하는 역사화와 기념사업, 피해보상의 해결 방식은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에 대한 요구를 외면해 왔다.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전쟁이나 국가 폭력 등 인권 침해의 과거를 청산하고 정의와 평화를 확립하는 일련의 과정과 조치)'를 추구하는 과거사 청산의 의의가 현실 정치 속 타협의 산물로 전락하면서 국가폭력의 진상을 밝히려는 피해자의 염원이 묵살되어 온 것이다.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5·18의 진상규명 운동과 인정투쟁은 5·18의 진실이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항쟁의 역사는 무명의 시민들보다 도청을 지킨 시민군을, 항쟁에 동등하게 참가했던 여성보다 남성 주체를, 넝마주이보다 지식인을 중심으로 조명되었다. 이러한 위계 안에서 여성이 겪었던 성폭력은 고백하기 어려운 것을 넘어 밝혀서는 안 될 사실, 피해여서는 안 되는 사실로 배척당해 온 것은 아닐까.


1989년 청문회에서 성폭력이 공론화되고 진상규명의 대상이 되었다면 보상이 인정되는 5·18 피해의 범주는 달라졌을 것이다. 청문회에서의 규명이 실패했다 할지라도 1~7차에 이르는 보상심사에 성폭력 피해신고가 접수된 것을 반영하여 '5·18보상법'을 개정했다면 성폭력 증언은 묵인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성폭력 증언의 45년간의 공백이 당사자의 침묵이 아니라 사회의 외면이고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침묵은 피해자 책임 아닌 사회의 문제


5·18 성폭력 증언은 이처럼 겹겹이 쌓인 어려움 속에 놓여 있었다. 총과 칼을 든 계엄군에 의한 극단적인 공포 속에서 여성들은 성적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광주 시민 전체를 폭도로 낙인찍고 모든 진실을 억압했던 신군부의 절대 권력 앞에서 계엄군, 궁극적으로는 국가에 의한 범죄를 고발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여성의 품행 문제로 비난하거나 '남부끄러운' 피해는 쉬쉬하길 종용했던 뿌리깊은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폭력 증언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왔다. 이러한 가부장적 위계질서는 5·18 항쟁 공동체 내부에도 존재했다. '폭도'이자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중의 낙인은 말해도 들리지 못할 것이란 좌절과 체념을 피해자가 갖게 했다. 증언이 되지 못하는 말은 비명이 되고 흐느낌으로 남는다.


피해 증언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있다. 나의 고통이 타인에게 인정받고 공감받을 수 있다는 믿음, 증언으로 지탄받는 것은 피해자인 자신이 아니라 가해자일 것이라는 확신. 즉, 내가 속한 공동체의 공감적 윤리와 제도적 정의에 대한 신뢰가 전제될 때 피해 증언은 감행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도, 지금도 피해자가 사회에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따라서 앞선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5.18이 있고 난 뒤 45년 동안이나 당신은 왜 알지 못했던 겁니까?"


45년의 공백은 피해자 증언의 의도나 진위를 의심할 단서가 아니다. 여성주의 트라우마 연구자 주디스 허먼은 '침묵의 공모(conspiracy of silence)' 개념을 통해 특정 폭력이 사회문제화되지 않는 구조에 대한 공동체 책임을 지적한 바 있다. "폭력과 학대가 발생했을 때 사회가 집단적으로 외면하고 침묵함으로써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구조"는 과거사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여성들이 놓인 구조였다.


이 구조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이 침묵을 당당히 깬 이들이 존재한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피해자의 수치가 아니라 국가에 의한 폭력이며 국가의 책임임을 선언하고 정의와 치유의 길을 새롭게 열고자 하는 여성들. 그들은 '열매'이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을 제기한 열매. 2024.12.12. ⓒ 열매


기사 출처- 오마이뉴스 송혜림기자 yeolmae518li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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