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가정폭력으로 인해 분리 조치된 남편이 아내를 만나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25일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지난 23일 오전 6시쯤 고양시 고봉동 한 빌라에서 40대 아내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50대 남성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아내 B씨는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조사 결과 A씨는 경찰에 의해 지난 2월 28일 이미 아내와 분리 조처된 상태였다. 당시 부부싸움 도중 아내가 가정폭력 신고를 했고 출동 경찰이 아내 동의를 얻어 즉시 응급조치를 시행했다. 응급조치는 경찰관이 현장에서 바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후 경찰은 검찰과 법원을 통해 영장을 받아 추가로 임시조치 1~3호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영장 발부가 필요한 임시조치 1호는 현장 격리, 2호는 주거지 또는 100m 이내 접근금지, 3호는 이메일 및 휴대폰 접근금지이다. 이보다 중할 경우 4호 정신 문제 등 의료기관 위탁(법원에서 판단), 5호 유치장 입감 또는 구치소 구금 조치를 적용한다.
하지만 A씨는 이후에도 지속해서 아내를 찾아가 만났다. 이 과정에서 지난 17일에 집 안에서 또 말다툼이 벌어졌고, B씨가 가정폭력으로 재차 경찰에 신고했다. 이에 경찰은 A씨가 임시조치(1~3호)를 위반했다며 해당 조치 2개월 연장에 더해 가장 강력한 제재인 임시조치 5호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1~3호만 법원에 청구하고 5호는 기각했다. ‘아내가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걸 승낙했고, 다툼에 폭력 등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 장비(스마트워치 등) 지급을 제안했지만, B씨가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2개월 연장된 임시조치 1~3호로는 남편의 접근을 막아내지 못했다. A씨는 계속 아내를 만나 분리조치 해제를 요청했고, 사건 당일에도 두 사람은 이 문제로 다투다 참극으로 이어졌다.
임시조치 제도 보완 필요성 제기
이와 관련, 임시조치 제도의 보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손광운 변호사는 “임시조치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가해자의 접근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게 현실”이라며 “가정폭력 특성상 만나자는 가해자의 제안을 피해자가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근거로 유치장 입감 조치가 시행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정폭력에 대한 형사사법 체계’에 문제가 드러난 만큼 임시조치의 적극적인 이행을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