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전광훈 목사의 며느리인 양모 씨는 리박스쿨 강사로 활동하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낙태 · 동성애 · 차별금지법 반대 교육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처 : 2021년 리박스쿨 \'주니어역사영어교실\' 수업 양모 씨 유튜브 채널)
"선생님, 동성애 하면 정말 병 걸려요?"
최근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어린이가 한 질문이다. 보통 6학년이면, "월경이 뭐에요?", "포경수술 꼭 해야돼요?"와 같은 질문이 흔한데 이 질문은 어떻게 나오게 된걸까? 그 배경에 극우 개신교가 있다. 대체 개신교와 성교육이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성교육계에서는 이미 오래된 문제다. 최근 리박스쿨 사태로 드러났듯, 극우세력의 교육계 침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극우 개신교는 이른바 '성경적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성교육 분야에 파고들었다.
'성경적 성교육'? 정말 '성', '교육' 맞나요?
"'성적 자기 결정권'은 무분별한 임신과 출산을 일으킨다.", "공교육에서 시행되는 성교육은 궁극적으로 프리 섹스와 가정해체를 지향할 수 있다", "동성애는 에이즈를 유발한다", "음란물 보거나 들으면 음란함이 심령에 퍼진다는 사실 가르치기", "남녀가 의복을 바꿔 입지 않고 자신의 성별에 맞는 복장을 취하는 것은 동성연애를 막는 방법의 하나로 작동한다"
이른바 '성경적 성교육'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프리섹스'는 과연 무엇이며,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이 대체 뭐가 문제인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주장의 틀린 점을 몇 가지 짚어 이야기해보자. 먼저 '성적 자기결정권'은 그들 생각처럼 '마음대로 섹스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자신의 성적 행동과 관계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의미한다. 가족이나 애인 등 타인의 간섭 없이 스스로 누구와 무엇을, 언제 할지 등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기에 설령 애인이나 부부사이라고 하더라도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동성애를 한다고 해서 없던 HIV 바이러스가 생기고 퍼져나갈까?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화같은 이야기다. 나아가 HPV를 비롯, 수많은 성매개 감염이 이성애자의 성관계를 매개한다. 그러면 이성애야 말로 만병의 근원이므로 죄악시하고 금지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당장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너 게이냐!"는 말은 비난, 조롱, 욕설로 쓰인다.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낙인찍힐까 두려워하는 청소년이 너무 많다. 동성애를 질병과 연결짓고 낙인화하며 이분법을 강화하는 이런 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파도 참고 숨기다가 더 큰 병으로 고통 받는다. 그래서 이런 말들은 황당을 넘어 유해하다.
성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온통 '죄악'으로 점철된 가치관에서 성에 대한 호기심은 그저 '통제' 대상일 뿐이다. 과연 자연스러운 성적 욕구를 그런 방식으로 통제 가능할까? 이미 청소년들은 VPN으로 IP를 우회해 규제를 피해가고 SNS에서는 알고리즘이 성적인 콘텐츠를 퍼다 주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성적인 욕구가 들 때에는 운동 하세요" 따위의 이야기를 했다가는 비웃음 사고 거리만 멀어진다. 'N번방 사건', '딥페이크 성착취', 온라인 그루밍 등 디지털 성범죄에서 청소년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됐다. 이는 성을 금기시하는 어른들의 통제 속에서, 청소년들이 성적 욕망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왜곡된 온라인 공간에서 성을 접하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보다 더 가까이에서 허심탄회하게 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태도와 교육이 필요하다.
모든 교육자들에게 교육은 늘 너무 어렵고 난해한 대상이다. 내 한마디가 예상보다 타인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늘 한 마디, 한 문장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미숙한 존재라 언제나 틀릴 수 있다. 그래서 교육안을 만들 때도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려 노력하고 참여자들에게도 비판의 여지를 열어 놓아야 함을 늘 강조한다. 그런데 '성경적 성교육'에서도 그게 가능할까? 지금까지 이들의 발언과 행동으로 미루어 보건데, 불가능하다. 이들의 방점은 '성'이 아니라 '성경'에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도 그들이 멋대로 곡해한 일부의 성경을 전도하는 목적에 꽂혀있다.

"성경적 성가치관 교육은 결코 기독교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그것을 교회에서 한다면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문제는 그 잘못된 믿음을 공교육에까지 끌고 온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교육 공공기관에 조직적으로 악의적인 민원을 넣어 자신들의 입맛대로 성교육을 하게끔 검열하고 있다. 그렇게 경기도에서는 이른바 '학부모 민원'으로 학교 성교육 도서 수백 권이 분서갱유 당한 사건이 있었으며, 다른 지역 성문화센터에서는 강사에게 '섹슈얼리티' 같은 표현을 쓰지 못하게 압박을 주기도 했다.
또 성문화센터 소속이 아니더라도 그 전문성이나 내용에 상관없이 교육자의 신상을 털어 '동성애를 옹호하는 강사'라고 공격하며 폐강시켜 다른 사람들이 교육 받을 권리마저 빼앗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종교에 기반 한 성교육 기관을 설립, '성경적 성교육 강사'를 2천 명 이상 양성해 학교에 투입하고자 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그 타겟이 천만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시 청소년성문화센터로 향했다. 대형 교회와 이를 기반으로 한 유튜브, 심지어 서울시 시의원까지 합세해 종교색을 내비치며 조직적인 민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20조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개신교 비율은 고작 20%다. 개인적으로 종교는 없지만 여행 가면 절이나 성당에 한 번씩 들린다. 주변에는 종교인 친구가 여럿이며 목사로 일하는 지인도 있다. 서로 다른 종교, 정치색, 성별, 국적, 성적지향, 취향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건 때로 어색하고 서툴 수 있지만 그 덕분에 많은 걸 배운다. 민주주의의 힘은 그 차이를 존중하는 자유에서 나온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대로 믿거나 믿지 않을 종교의 자유는 정말이지 중요하다.
앞서 어린이의 질문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러분 누구 좋아해본 적 있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 않나요? 그런데 누가 그 마음을 죄악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저는 성교육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그걸 원하지 않나요?"
질문을 던진 어린이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이 어린이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자 과연 누구인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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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press@womennews.co.kr
출처 여성신문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기고